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비사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2분, 궁정동(宮井洞)의 밀실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암살하였다. 우발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한국 현대사에 큰 의미를 지니는 궁정동의 총성이 울리기까지의 전개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박 정권 18년간은 미국과 갈등관계인 때가 더 많았다.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던 존슨 대통령 시절이 가장 사이가 좋았다. 박정희 씨는 미국을 신뢰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나라로 한국과의 안보약속을 충실히 지킬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 이후 한미 관계는 계속 충돌하였다. 김한조 박사와 사이비 로비스트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한국의 인권 문제 등이 겉으로 드러난 문제였으나, 실제는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 문제였다.